경주의 문화재

소형산 야간산행을 하며 형산강의 비밀을 탐구한다

죽전일지 2024. 7. 20. 14:52

12년8월3일(금)

터누아 에서 야간 산행을 가자고 한다.

행선지가  강동면 국당리 "소형산" 이라고했다.

사실은 소형산이라는 명칭은 이 형산의 내력을 보아서는 맞지않는 명칭인것같다

 

원래는 형님산 또는 兄山(형산) 아니면 아우산 동생 산 또는 弟山(제산) 이라고 불러야 하는 곳이다 

오늘 야간이라 사진도 나오지 않고 대충 후레쉬로 먹거리만 

조금 찍어 올렸으니, 함께 하신분들은 이것으로 대충 추억을 더듬으시고

대신 이  사진밑에, 경주 포항의 젖줄인 형산강 내력을 한번더

알아보자는 뜻으로  이야기를 적어보았으니 이해 해주시기 바랍니다.

 

황성공원서 오후7시 30분쯤 차량두대에 6명씩 꾸껴 넣어 12명이 히히낙낙 출발 -

국당리서 8시경 들머리에 올라 약 4Km 정도 소형산까지 가서 원점회귀 합니다

      

 

여기는 부조정이라고하는 정자인데

들머리서부터 여기 까지는 한 20분 ? 30분 쯤 ? 계속 오름길이었는데

오늘 코스중 가장 높은곳이란다

 

이 부조정 아래 향산강변이 "조선시대 3대 시장중 하나"로 이름난 "부조장" 이란다

약 120년 간이나 황해도 명태, 강원도 오징어, 포항연안의 청어와 소금,

경상도 전라도 일대 농산물 교역장으로, 수많은 황포돗대와 객점, 여각들이

있었고 전국 보부상이 모였던 곳이었다고 하니, 오늘 푸른 달빛을 받으며 비치는

부조정 아래 용트림처럼 길게 뻗친 형산강을 내려보는 산객의 뇌리에

그때의 부조장터가 필름처럼 펼쳐진다. 

 

 

 

 

 

 

                                            밤땀을 월매나 흘리고 한톨 한톨 까먹는 고동맛이 끝내준다

                             어저께 형산강에서 주운 고동 이란다.

                             요사이는 덕동댐에 고래가 놀고 남산계곡에서 전복이 잡히니

                             형산강에 고동 나는것은 당연지사지.  암 - 

 

 

 

 

 

 

 

 

       소형산 아니 아우산 즉 제산을 한바퀴 돌고나니 히히낙낙 놀고 먹는시간까지

       꼭 3시간 반 정도 걸린가보다.  소형산 정상에 만들어놓은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니 도데체 하산 하기가 싫다 

       오랜만에 와본 야간 산행이지만 야간 산행은 이런맛이 있어 좋다 

 

 

                                     자 - 이제  형산강은 왜 형산강으로 불리웠을까 - - - ?

 

경주에서 7번 국도를 타고 형산강을 따라 포항시 구역으로 들어가는 강동면 국당리로

지나다 보면 강을 끼고 발달된 드넓은 들판은 온데 간데 없고 강은 갑자기 칼로

자른듯한 좁은 협곡 사이로 빨려 들어간다.

협곡의 남쪽을 형산(兄山), 북쪽을 제산(弟山), 합쳐서 형제산이라 하고

잘려 나간 듯한 부분을 ‘형산맥이’라 한다.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형산과 제산이 신라때 까지는 하나의 산이었단다.

이산을 두개로 나누어 그사이로 강을 흐르게한 재미난 설화가 있어

소개해본다. 아시는 분도 다시한번 재미로 읽어 보시기 바래요 -

 

옛날, 형제산이 단맥되기 전에는 남천과 북천, 기계천의 물이 안강 일대에 모여

호수를 형성하였고, 범람하면 경주까지 그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강의 치수 문제는 신라의 숙원사업이었다.

 

신라 마지막왕 경순왕과 태자가 이를해결하려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어느날 밤 왕자의 꿈에 한 神人이 나타나

"네게 이 주문을 줄테니 초아흐렛날 형제산 밑에 가서 외워라

그러면 너는 구렁이가 될 것이다.

구렁이가 된 너를 100일 안에 용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너는 용이 될 것이다

그 때 하늘로 오르면서 꼬리로 산의 허리를 쳐라, 산이 갈라지고 물이 흐를 것이다."

 

그래서 시킨대로 했더니 왕자는 정말 구렁이가 되었다
구렁이가 된 왕자는 용이라고 불러줄 사람을 기다렸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마다 '구렁이 봐라!' 고 외치며 도망칠 뿐

 한 사람도 용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벌써 100일이 지나고 이제 마지막날 까지 와버렸다.

 

왕자가 낙심을 하고 있을 때 한 할머니가 우는 아이를 업고 가다가

아이를 달래기 위하여 "자꾸 울면 저 구렁이가 널 잡아 먹는다!"하고 겁을 주었다.

그러자 울고 있던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더니

 "할머니 저것은 구렁이가 아니라 용이야 용!" 하고 소리쳤다.

 말 끝에 왕자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면서 꼬리로 힘껏 형제산 허리를 쳤다.

천지가 진동하면서 산이 두쪽으로 갈라지고 경주 일대에 괴였던 물이 빠져 강을 이루었다

이때 갈라진 큰산이 형산(兄山)이고 작은산이 아우(弟山)산 이며 강은 兄山江이 되었다.

 

 뱀을 용으로 불러 준 아이에게는, 안강호수에 물이 빠진후 생긴 그 일대의 논밭을 주고

아이의 이름을따서 이 "들"의 이름을 "유금"이라하여 지금까지 "유금리"라 불린다

 

이곳 강동면 국당리 형산 정상부에 "왕장군 용왕전"이라는 법당이 있고 

주로 무속인들의 출입이 잦다. 그것은 경순왕이 나라를 왕건에 바치고 송도에서 서거하자

신라 유민들은 그를 추모하여 형산 성터에 성황사(城隍祀)라는 사당을 건립하고

경순왕 "김부"와 태자 "김충"을 모셨다. 여기에는 두분을 형상하는 목신이 만들어져있다.

원래는 춘추향제를 모시고 넋을 위로하였지만 고려 말부터 기복 신앙으로 바뀌어

무속인들이 굿을 하는 형태로 지금까지 전해오며 형산의 바위들에 기복을 비는

글씨들이 보기싫게 곳곳에 적혀있다.

"국당" 이라는 명칭도 굿을 많이하는" 굿당"에서 유래되어 지금까지 불리워진다고 한다.

 

 

포항을 가로 질러 흐르는 형산강, 산이름을 강에 붙인 경우는 아마 유일무이한 것 아닐까?

 

 

 

                        경순왕 부자의 목신이 모셔진 형산 정상의 왕룡사원

 

 

 

                  왕룡사에 있는 김부대왕과 김충태자의 목상

 

                            

                                                                        굿당 바위

     기원하는 사람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페인트로 바위를 훼손하고 있다

 

 

                         하얀 스프레이로 도배한 현장

 

 

            촛불을 피운 흔적과 촛농과 울산 모모씨의 이름들..

 

   

 

       이곳은 아예 바위에 이름을 새겼네, 확실하게 빌고 싶은 심정?

 

이렇게 아직까지 국당리는 굿당으로 이어져 오고있다.

우리가 그냥 생각없이 불러왔던 형산강이 이렇듯 사연이 깊지요.

모쪼록 오늘 경순왕과 태자의 안타까운 넋을 위로하고 명복을 기원하면서

먼 역사의 한쪽을 둘러보았습니다. 

오늘 야간 산행은 여기에 큰 의미가 있었던것 같습니다.

원점 하산하니 밤11시 반쯤 된것 같네요

함께 하신분들 땀 많이 흘려 보약 마셨고, 차암 - 재미 있었습니다

복 많이 받으십시요 -

 

 

                              죽전  서  동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