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 하시지요
문화재 사랑봉사대 입니다
오늘은 무장사지에 다녀 오면서 귀부 안내글에 대해 평소에 느낀점을 사진과 올려 봅니다
계곡에서 무장사지로 오르는 길은 옛길과달리 계단길로 단장되어 좋았습니다
석탑이나 미타불사적비 (이수및 귀부)가 있는 자리는 왠지 그 모양이
버려진 묫 자리 처럼 관리하지 않는 사적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대충 돌 자갈이나 마른 잡풀들을 제거해 보지만 전혀 볼품이 안나네요.
비록 비신은 박물관에 가 있고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지만
추사 선생의 조사기가 있고 일부파손 되었지만 아름다운 쌍귀부가 늠늠하게 받쳐있고
특히 귀부에 십이지신상이 있으며 이수에는 쌍룡이 마주보며 여의주를
잡고있는 이 멋진 귀부와 이수는 무열왕릉 비 이후 남아있는 이수가 없다고 하니
이것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왕래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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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와 귀부가 있는곳의 안내판을 읽어보면
- 무장사라는 이름은 태종무열왕이 병기와 투구를 감추었기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삼국유사에 전한다 - 라고 유사에 있는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이곳을 찾는 여러사람들중에 이 안내판을 두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아서 이렇게 의견을 구합니다
삼국유사에 보면
諺傳太宗統三已後(언전태종통삼이후) - 전하는 말로 태종임금이 삼국통일 이후에
藏兵鍪於谷中(장병무어곡중) - 병기와 투구를 이골짜기에 묻었기에
因名之(인명지) - 그런 이름지었다
라고 되어 있으므로, 있는 그대로 안내글을 적어놓아야 하는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삼국통일은 문무왕때 663년에 백제 의자왕을 완전 진압하고
668년12월17일에 고구려를 멸망 시켜 668년말에야 삼한 통일이 되었습니다.
참고 - 무열왕 제위기간 : 654년 - 661년 (8년)
삼국통일이 문무왕때 였다는것을 대다수가 알고있기에
모두들 안내판을 읽어보고 고개를 갸웃하고들 합니다.
후학자들이 유사에 문무왕을 무열왕으로 잘못 적었다 고 정리를 하고있고
또한 전 문화부장관 유홍준 박사의 경주편을 보면 무장사란 이름은 문무대왕이 전쟁을 끝내고
병장기를 이곳에 묻었기에 나온말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따라서 안내판에
무장사란 이름은 문무왕이 병장기를 묻어 생긴이름이며, 삼국유사에는
諺傳太宗統三已後(언전태종통삼이후) 라고 되어있다.
라고 고치거나 아니면 기존 안내글에 보조설명을 좀 넣었으면 어떨까 - -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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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들의 논란을 들었기에 한번 의견을 던져봅니다.
한번쯤은 생각해 보는것이 어떨까 해서 - -
문화재 봉사대 서 동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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