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갑이가 부인과 함께 천오백년전의 역사속으로 들어왔다
옛 서울에 자리깔고 있는 죄로
단일코스로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볼수있는 보물길로 안내했다.
코스는 용장 설잠교 - 용장사지 - 삼륜대좌불- 마애여래좌상- 삼층석탑 -
비파골 - 삼화령 - 금오봉정상 - 상사바위 - 바둑바위 -상선암 마애석가여래(큰바위부처님) -
삼릉계 석불좌상 - 선각여래좌상 - 선각육존불 - 마애관음보살상 -
냉골 석조여래좌상 - 삼릉 - 삼체석불
이렇게 엄청난 보물들을 접할수있는 코스로 출발
(2011.10. 29일 09:40분)
용장골 들머리에서 인증샷 !
남산에 오르려면 먼저 마음속에 있는 모든것을 내려놓아야한다
그래야만 천수백년전 신라인의 마음 불심 문화가 보인다.
왜냐하면 경주남산은 바위하나 돌조각하나에도 신라인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놓았기 때문이다
1000여년 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길.
1000년 전 신라 사람들이 불심으로 드나들던 그때의 마음으로 - -
들머리에서 약15분 정도 올라가면 설잠교가 나온다
여기에서 설잠교위를 건너 좌측 미륵의 세계로 오를수있는 수미산( 불국토)
을 향한다
저어기 숲사이로 사람들이있는 저곳이 "용장사지" 이다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때 창건된 사찰로 고승인 대현스님의
고사가 전해내려오고 있으나 지금은 쓸쓸히 크고작은
돌축대 일부만 남아있다.
또한 이 절에는 조선초기 세조때 매월당 김시습이 기거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神話)를 쓴 절이기도하니
약 800여 년에 걸친 긴세월 동안 용장사가 존재했음을 알수있다 .
매월당 선생은 용장사 뜨락에 북향화(목련)을 심어 영월에 귀양가 있는
단종 임금을 그리워 했다고 한다.
목련은 꽃봉오리가 펴질때면 항상 북쪽을 향해 피어나기때문에
북에 있는 임금을 그리는 꽃의 별칭으로 붙여졌다.
자 !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잘 봐야합니다. 이 두사람을 보는것보다
저- 위에 산 봉우리를 잘 보시면 하늘과 맞닿아있는 삼층석탑이 보이죠 - - ?
이 탑은 자연과 탑신이 일체가 되도록 두개의 기단으로 건축되었는데,
금오산 중앙 바위 봉우리를 하층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상층 기단을
다듬어 얹고 삼층석탑을 올렸는데,
이것은, 하층기단은 제석천을 지키는 수미산이고 탑위의 푸른하늘은
수미산정의 천상계로 서라벌 벌판을 미륵불이 굽어 살피는
불국토로 만들었다.
제가 들머리에서 한 말이 마음을 비워야 보인다.
또, 수미산정으로 올라간다고 했던말이 이것입니다
이렇게 동화 되어야 불국의 문화가 보입니다.
수미산 :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으로 가는산
사왕천 : 불교의 육욕중 첫번째 하늘로 사천왕이 다스리며 수미산의 중턱
도리천 : 수미산의 정상에 해당하며 석가불의 어머니 마야부인이 환생한곳
또한 선덕여왕이 도리천에 묻어달라한 그곳이며
이곳의 하루는 인간세계 100년에 해당하며 1,000세까지 머물수 있다(3,650만년)
제석천 : 불교의 수호신이며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에 있는 하늘의 임금
야마천 : 공거천, 즉 천상을 말하며 이곳의 하루는 인간세 200년이고 2,000세까지 머문다(1억4천6백만년)
도솔천 : 인간세 에서 덕업을 많이 샇고 불심이 깊으면 도솔천에 태어나는데
미륵불이 계시고 천상인이 즐기는 곳이니 곧 불국이며 부처가 되었다는 뜻이다
수미산 도리천에서 바라본 남산의 가을
이곳은 용장사 터에 있는 삼륜대좌불로 보물 187호이다
자연바위의 기단위에 북 모양의 중대괴임을 하고 그 위에 원반석을
층으로 쌓은 이러한 양식은 우리나라에서 유래가 없는 특이한 형태다
삼륜의 대좌에 머리가 없는 좌불 이라 존명도 알수 없어 보는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기단부의 둥근 원반석 1층 2층은 보통모형이나 3층원반은 3겹 연꽃 방석 이다
윈쪽 어깨에 드리워진 가사끈의 수실이나 특이하게 흘러내린 가사의 자락들은
뭉렬처럼 펄럭이며 무릎을 덮고 흘러내려 상현좌를 이루고 있는모습이 승상이란 말도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용장사에 대현스님이 계셨는데, 스님이 기도하면서 미륵장륙석상을
돌고 있으면 미륵 부처님 또한 스님을 따라 돌았다는 글이 있다.
삼국유사의 이야기처럼 이 석상이 미륵불이라 한다면,
기단석 위가 사왕천이 되고 처음의 둥근반석 위는 도리천,
두번째 반석 위는 야마천이 되며
마지막의 연화 원반대좌는 미륵보살이 계시는 도솔천이 된다.
이 엄청난 예술품, 천수백년전의 보물을 찬찬히 감상해 보시라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 보물 913호)
삼륜대좌불 옆에 아차 하면 못 보고 그냥 지나쳐버릴 바위벽 한켠에 숨이 막힐정도로
아름답게 부조된 부처님이 계신다.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오는 옷자락이 가슴부분의 옷깃 속으로 접혀들어간 점은 남산 미륵곡 보리사에 있는
석불좌상과 비슷하다. 그러나 옷 주름 표현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여러층단을 이루면서 부드러운 물결처럼
처리되어 섬세한 편이다. 왼쪽어깨 바깥부분에 글씨가 있는데 "태평 2년8월"에 무엇인가를 하였다는 내용인데
마멸이 심하다. 이 마애불은 당당한 자세의 불신표현이나 부드러운 옷 주름선의 흐름, 섬세한 조각기법등에서
통일신라 전성기 때 양식이 남아있으나 시대적으로는 8세기 중엽의 석굴암 조각보다 약간 후대로 보고있다.
(4층으로 착각 할수있다. 밑부분은 기단부 임 - 기단부는 갓이 없는것으로 알수있다)
자 - ! 여기가 아까 저 밑에서 올려보았던 용장사지 삼층석탑 (국보 186호 )
아까 이야기 했던 말을 다시한번 살펴 보며 공부해 보자
이 탑은 자연과 탑신이 일체가 되도록 두개의 기단으로 건축되었는데,
금오산 중앙 바위 봉우리를 하층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상층 기단을
다듬어 얹고 삼층석탑을 올렸다.
이것은, 하층기단은 제석천을 지키는 수미산이고 탑위의 푸른하늘은
수미산정의 천상계로 서라벌 벌판을 미륵불이 굽어 살피는
불국토로 만들었다.
(오래전 새벽에 찍은 사진)
제가 들머리에서 한 말이 마음을 비워야 보인다.
또, 수미산정으로 올라간다고 했던말이 이것입니다
이렇게 동화 되어야 불국의 문화가 보입니다.
수미산 :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으로 가는산
사왕천 : 불교의 육욕중 첫번째 하늘로 사천왕이 다스리며 수미산의 중턱
도리천 : 수미산의 정상에 해당하며 석가불의 어머니 마야부인이 환생한곳
또한 선덕여왕이 도리천에 묻어달라한 그곳이며
이곳의 하루는 인간세계 100년에 해당하며 1,000세까지 머물수 있다(3,650만년)
제석천 : 불교의 수호신이며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에 있는 하늘의 임금
야마천 : 공거천, 즉 천상을 말하며 이곳의 하루는 인간세 200년이고 2,000세까지 머문다(1억4천6백만년)
도솔천 : 인간세 에서 덕업을 많이 샇고 불심이 깊으면 도솔천에 태어나는데
미륵불이 계시고 천상인이 즐기는 곳이니 곧 불국이며 부처가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가 수미산으로 보면 도리천에 속한다
저 보살님은 무슨 바램이 더 있어 돌을 올리는가 -
아마도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기도하는가
경주의 불국사나 황룡사, 석굴암 등이 지배층의 대작불사로 왕족과 지배층의 공간이었다면
남산은 백성들의 불심을 보듬은 곳이었다. 왕족들이 화려하고 우람하고 거대한 절집을 세웠다면,
백성들은 아예 남산을 통째로 불국토를 이루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삼국통일의 와중에 전쟁터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을 백성들의 신산한 삶과
그들이 닿고자 했던 이상세계를 남산에 그려내려 했던 것은 아닐까.
남산의 숲길에서 저절로 부처를 만나러 오갔을 신라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잠깐 ! 위와 아래 사진을 자세히 보라 - ! 톱니같은 자국이 보이죠 ?
남산에는 이렇게 갈라진 바위들을 많이 볼수있다.
이것은 옛 장인들이 바위를 자를때 아래 사진처럼 구멍을 파서
콩을 채워넣어 물을 부으면 그 콩이 불어나서 바위를 갈랐다.
그리고 겨울에는 이 구멍에 물을 부어, 그 물이 얼게되면
부풀게 되어 바위를 갈랐다고하니, 이얼마나 기상천외한 방법인가 - !!
이렇게 갈라진 바위는 톱니처럼 보이겠죠 -
수미산정을 다 올라오니 5.16 도로가 나온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을 걷고 내어다 보면서
발자욱 마다 보물이 숨겨져 있는 이 천년수도를
어떻게 해야할까 - - -
수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
이길을 질러 산쪽으로가면 비파골이 보이는데 그리 가지않기 때문에 비파골 얘기를 잠깐 하고간다
32대 효소왕이 망덕사 준공식에 제지내러갔다가 남루한 차림의 노승이
비파암에서 왔다고 공양을 청하자
왕이 별로 달갑지않게 선심쓰듯 공양이나 하라고 말하며
돌아 가거던 왕과 함께 공양 했다는말은 하지말라고 했다.
이 누추한 노승이 예 - 왕께서도 대궐에 가시거든 진신석가와 공양했다는 말은 하지마시오
하고 구름을 불러 날아가버렸다.
그제서야 왕이 후회를 하고 신하들께 찾으라했지만 비파골짜기 바위에
지팡이를 남겨놓고 사라져버렸기에 왕이 석가사를 짖고 공양을 올렸다는전설이 있다
여기서 삼화령으로 갔다가 다시 금오봉으로 와야 하는데
그냥 금오봉으로 가기로했다
대신 삼화령에대해 잠깐 집고 가자
삼화령은 금오산, 고위산과 이곳 연화대를 삼화령이라 하는데
남산은 정말 불국토로 생각했다는것이
남산은 미륵불과 연관이 깊다
충담선사가 해마다 3월삼짇날과 9월9일 중구절에는 꼭 차를 끓여 미륵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이 삼화령에 미륵불과 관련있는 세분 석불이 있었는데 지금 경주박물관에 옮겨져있다
명확치는 않으나 연화대를 미륵불이 있었던곳으로 생각을 한다
정상에서 인증 샷 - !
정상에서 상선암 쪽으로 내려가는계단
상선암 윗쪽 상사바위
옛날 이 아랫마을 큰 부잣집에 머슴으로 있는 돌쇄와
이집 아씨에 얽힌 슬픈 이야기다.
돌쇄와 아씨는 서로 사랑하게 되었으나 이사랑은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이란것을
잘 아는 돌쇄는, 어느날 남산 이바위 아래서 종의 처지를 비관하며 목배달아 죽었다.
그날밤, 아씨의 꿈에 그리운 돌쇄가 나타나 이바위에 자기가 있다 하므로
다음날, 그곳에 가보니 돌쇄가 목매어 죽어 있었다.
그리운이의 죽은 모습을 보고 아씨또한 목매달아 버렸다.
그 뒤로 이 바위를 상사바위라 이름했고 이 바위 아래서 바위 위의 움폭 파인곳에
돌을 던져 얹혀지면 소원이 이루어 졌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유효하다 ( ㅎ ㅎ - )
여기는 내가 하도 여러번 사진을 올린곳이기에 낯이 익을거다
너무나 아름다운모습
저 - 건너 큰바위부처님 (나는 늘 이렇게 부른다) 모습을
제일 아름답게 볼수있는곳이 여기다. 나는 여기서 예불 드릴때가 많다.
상선암 위의 상사바위 위에서 바라본 석가여래좌상
헉 ! 갑자기 왠 전복 ?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고 시간이 12시가 가까웠으니
뭘좀 먹어야제. 갑이 마나님 가져온 과일에 커피에 요기를 좀하고
참 ! 여기 앉은곳이 신선이 바둑을 둔 "바둑 바위"인데
사진 찍는걸 깜밖했다
자 - 이 부처님은 삼릉계 마애석가여래좌상 ( ) 이다
상선암 바로위의 이 부처님은 높이가 7m로 삼릉게에서 가장 큰 부처님이시다
광배는 자연 암반을 깎아 삼았는데, 깎아내다가 만 듯 거칠게 보인다
머리는 광배로 삼은 바위와 떨어져 보일 만큼 돋을새김을 하였으나
어깨 부분은 광배 바위 면에서 조금 떨어지게, 나머지 몸은 바위 면에 그대로 붙여서 선으로 그리듯 새겼다.
밑그림은 그냥 자연바위에 선각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돋을 새김으로 윤곽도 뚜렸해지며
얼굴은 완전히 도드라져 깨끗하게 새겨졌다.
또한 옆에서 보면 바위에서 부처님이 서서히 앞으로 솟아나오고 있듯이 조각 되어있다.
이것은, "자연과 부처, 인간, 삼라만상 우주 전체가 하나" 라는
옛 신라 장인의 깊은 뜻이 담겨있다.
또 하나는, 법흥왕 이전 신라인의 고유신앙이 바위신이었다고 한다.
바위에서 부처님이 나타나고 있는 이 형상은
바위에향한 고유신앙을 부처로 바뀌게하는 바램도 여기에 묻어있다고 볼수있다.
풍만한 네모난 얼굴에 눈썹은 둥글고, 눈은 반쯤 뜨고 있다
코는 오뚝하고, 작은 입은 굳게 다물었고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큼직하다.
쉽게 범접하기 어려울 만큼 근엄해 보이는 얼굴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대함에서 뿜어나오는 위엄뿐만 아니라
자비에 넘치는 얼굴 모습이다
나는 이 큰바위 부처님이 좋아 특별히 큰산을 가지 않으면 주말에 늘 이곳을 찾는다.
상 선 암
상선암에서 10분정도 내려가다 우측골에 우뚝 서있는 보물
삼릉계 석불좌상 ( 보물 666호)
순백화강암으로 조성된 여래상이 화려한 연화대석 위에 앉아 계신다.
연화대좌는 하대석 없이 땅에 있는 지대석 위에 직접 놓은 중대석 위에 얹혀 있다
8각 중대석엔 면마다 안상(眼象)을 새겼다
안상이란 귀인들이 앉는 평상을 말하는 것이니 중대석 위는 절대로 존엄한 세계라는 뜻이다
이렇게 존귀한 평상 위에 보상화(寶相華)로 장식된 화려한 둥근 연꽃송이를 얹어 놓았으니
이 연꽃은 수미산 위에 핀 하늘나라의 꽃송이인 것이다.
이 불상대좌에는 이렇게 찬란한 광채나는 꽃송이를 만들기 위해
애쓴 신라인들의 무한한 정성이 어려 있다.
광배의 가장자리에는 타오르는 불길을 새겼는데 불꽃들이 춤추는 듯 약동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화려하고 생기에 넘치는 석불광배는 경주남산에서 뿐 아니라 전 신라시대 불상에서도 예가 드문 걸작이다
이 불상은 어느 방향에서 보나 아름답다.
곁에 있는 바위들이며 계곡의 여울 등에 잘 조화되도록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여래상의 존명은 아미타여래라 생각한다. 서쪽을 향해 앉아 계시기 때문이다. 파손되지 않고 원형대로 있다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 - -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 - - |
삼릉계석불좌상은 8~9세기경 조성된 작품으로, 오랜 세월동안 도굴등으로 머리는 땅에 떨어져 있고
광배도 떨어져 조각나 널려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23년 등에 이르러 정확한 고증작업 없이 불상의 안면을 콘크리트로
보수 처리하는 등 엉성한 모습으로 오히려 훼손되어 있었다
2007년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남산 삿갓골 제1사지 석불입상, 남산 미륵곡석불좌상(보물 제136호),
안계리 석불좌상(문화재자료 제92호), 남산 용장계석불좌상 등
비교적 안면이 온전한 석불 등을 참조해서 보수했다
광배의 경우 10여 개로 조각난 편(片)을 접합해 원형을 살리고자 했으며,
결실된 상부는 새로운 석재로 조형해 통일신라시대 광배의 윤곽에 최대한 가깝게 조성했다
1910년모습 (좌 흑백)파손된 머리가 좌대옆에 보인다
정비 전 모습 (우)는 어디로가고 없고 얼굴모습은 딴판이다
삼릉계석불좌상의 광배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두 줄 돋음새김 된 주형거신광(舟形擧身光)으로, 식물 모양의 장식 무늬 등이 한층 돋보인다.
어느 불자가 수도했는지
임자없는 암굴이 역사를 지켜오고있다
삼릉계 선각 여래좌상 ( 문화재 159호)
이 선각상 역시 유홍준 전 문화부장관이 입에 침이 마르듯 자랑하는 보물이다.
석불좌상에서 능선으로 조금 더 나아가면 약 10m 높이의 큰 바위에
선각으로 된 여래 좌상이 나온다.
큰 연꽃위에 앉아 얼굴만 돋을 새김으로
옆으로 떨어져서 보면 입체적이다.
암벽 중앙에 지름 2.5m 되는 큰 연꽃위에 앉아 설법인을 표시하고 있는 如來像(여래상)이 새겨져 있다.
몸체는 모두 선각으로 나타내었는데 얼굴만은 돋을 새김으로 표현되었다
눈썹과 눈은 아주 가깝고 코는 길고 입술은 두껍고 커서
균형잡힌 얼굴이라 할수 없으나 소박하여 위엄이 있다.
중요한 선은 굵게 그었고 옷주름같은 것은 가늘게 그어 變化(변화)를 주었다
全體(전체)에서 소박하고 구수한 맛이 풍긴다. 그러나 신라 불상들처럼 세련되지 못했다.
年代(연대)는 高麗時代(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고있다.
바위면의 중간쯤에 가로로 갈라진 홈이 파여 있는데,
위쪽에 불상을 조각하였으며, 연꽃대좌의 아랫단은 홈 아래에 걸쳐 있는것이 특이하다.
삼릉계 선각육존불 ( 문화재 21호)
성각여래상에서 조금만 더 아래로 내려가면 또 보물이 있다
그림으로 그려서 쪼아낸듯한 이런 작품은 보기 드문일로 선각 마애불 로는
어뜸가는 작품으로 평가 되고있다.
앞쪽 삼존불은 좌우 협시불이 웃옷을 벗고 꽃쟁반을 들고 꿇어 앉아있는
모습은 보기드문 작품이다.
냉골 석조여래좌상
이렇게 등산로로 내려오면 길옆 바위 위에 머리 없는 석불좌상(石佛坐像)이 앉아 계신다.
근년까지도 계곡에 묻혀 있던 것을 파내어 지금 장소에 앉혀 놓은 것이기 때문에 마멸이 없고 옷주름들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다만 머리가 없어지고 두 무릎이 파괴되어 손 모양을 알 수 없게 되었다
편안히 앉은 자세며 기백이 넘치는 가슴이며 넓은 어깨는 8세기 중엽 신라 전성기의 위풍당당한 불상이다.
특히 왼쪽 어깨에서 가사 끈을 매듭지어 무릎 아래로 드리워진
두 줄의 영총(纓總)수실은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우리 나라의 특색 있는 장식품인 매듭은 먼 신라 때부터 전해 왔다는 것을 이 가사 끈이 말해 주고 있다
부처님의 아래옷(裙衣)을 동여맨 끈도 예쁜 매듭으로 매어져 있다
이 불상은 용장사(茸長寺) 삼륜대좌불(三輪臺座佛)처럼 가사끈이 있기때문에
존명을 정하긴 어려우나 여래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목이 없지만 인근 계곡을 잘 찾으면 목을 두상을 찾아낼수도 있다. 그렇게만되면
어디에도 뒤지지않는 예술작품이라고 한다
석조여래 좌상에서 10여m 떨어진곳에
삼릉계 마애관음보살상이 있다 ( 유형문화재 19호)
기둥모형에 돋을 새김으로 새겨진 부처님으로 머리에 보관을 쓰고 정병을 들고있고
이마에 미륵불이 새겨져 있어 자비로운 중생을 구제 해주는 관음보살 임을 알수있다
돋을 새김으로한 뒷 바위 자체를 광배로 이용하여 자연과 인공이 조화된
통일 신라시대의 작품이다.
사진을 잊어버리고 못찍어서 전에 찍은사진을 올림
삼릉 (사적 219호)
8대 아달라.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이 능을 설명 하기전에 지증왕릉 천마총을 한번 생각해 보자
천마총은 엄청난 숫자의 보물들이 출토되었다
천마총은 돌무지 덧무덤이라고 해서 땅에 목곽과 부장품을 놓고 위에 호박돌을 쌓은 후 다시 봉분을 쌓는 형태로
3세기에서 6세기 초반 경주지역에서만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무덤 양식으로 대표적인 예가 천마총이다.
이 형태의 무덤은 세월이 흘러도 봉분이 무너져 내리지 않기에 경주 지역에 남아 있는 대형 고분들은 대부분
돌무지덧널무덤이라 보셔도 무방하며 도굴도 쉽지 않기에 발굴을 하면 삐까번쩍 보물들이 무더기로 출토되었다.
삼릉의 이 능 들은 도굴로 파혜쳐 졌을때 내부를 조사한 결과 굴식 돌방 무덤 형식이다
이 봉분둘레에 김유신 묘처럼 석을 둘렀던 것으로 다 없어지고 흙무덤만 남았다
돌방무덤은 말 그대로 돌로 석실을 만들고 한쪽에 입구를 내 출입문을 만든 후 돌방에 시신을 안치 후
입구를 막고 그 위에 봉분을 쌓은 형식이다.
돌무지덧널무덤에 비해 봉분의 크기가 작아졌으나 추가 매장이 가능한 형태였습니다
안타갑게도 도굴이 용이해 경주의 상당수의 돌방무덤은 도굴을 당했습니다.
이제 답사가 끝날때도 되었고 재미있는 농담 한마디 하겠다
포석정 옆에 보면 6대 아달라왕릉이 있다
신라때 보면 왕족 혈통을 잊기위해 근친혼인을 하였다. 그로인해 족보가 엉망이 될수밖에 -
사촌간 고모간 아재비 질녀간에 막 박아 조지니 당췌 이거야원 - - -
그래서 제발 박는것 좀 가려 하라고 왕 이름을 "지마" 로 - -
앞에 "박"씨성을 붙이면 "박지마 - !"
이렇게 되니 혼인을 할수 없게 되자
8대에 와서 왕의 이름을 "아달라" 박아달라 - ㅋ ㅋ
(절대 오해 없으시길 이런 웃으게 지어낸 이야기도 있더라는 말입니다)
여기는 마지막 코스 배리 삼존불 (보물 63호)
통통한 아이의상 처럼 인자한 미소를 띠면서도 익살스럽고 재미있게 조각되어 있다
중앙 본존불의 아미타여래가 왼손바닥을 아래로 내린것은 중생들의 소원을 들어 주겠다는 약속이고
오른손바닥을 올린것은 두려움을 없에주겠다는 약속이다. 우협시보살은 대세지보살로 연꽃을 두르고 있다
좌협시보살은 관음보살이며 머리에 아미타불을 모시고 손에 정병을 들고있어 관음보살님이다
조용하게 미소짓는 중앙 본존불, 왼손 바ㅣ닥을 앞으로하여 아래로 드리우고 있는것은
중생들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약속이고
오른손바닥을 앞으로하여 위로 들고 있는것은 두려움을 없에 주겠다는 약속의 표시이다.
소라모양의 머리(나발)에상투모양의 머리(육계)가 있는데 표면이 매끄럽다.
젓살이 빠지지않은 아이처럼 얼굴은 풍만하고 다문입과 아래로 뜬 눈은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을 표현하고 있다
백제시대 불상인 서산 마애삼존불과 얼굴 모습이 유사 하다 던가 하는점에서
삼국시대말, 7세기 신라 불상조각의 대표작이라 평가된다.
배리 라는말 - -?
拜자는 절배자다
이곳에 유렴이라는 재상이. 돌아가신부모를위한 재를 올리려고 고승을 모시는데
찾아온 스님이 하도 꾀죄죄 하여 내 쫓았다
이 스님은 아무 말없이 장삼소매에서 작은물체를 내어 땅에 내려놓으니 호랑이되어 타고 갔다.
그제서야 크게 후회하며 수없이 절을 했다는 전설로 이동네를 배리라고 했다
이렇게 하산 완료하니 1시 40분이다. 약 4시간 정도로 수박 겉 핥기 식이지만
천년의 시간 속으로 다녀 왔다.
어떻게 좀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추억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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