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남산 문화재)

서남산 이야기(1)2012.1.20

죽전일지 2024. 7. 9. 10:53


사랑하는 내친구 돌뿌리 김석근이 의 연락으로

경기도 "안양 산죽회" 일동이 경주 남산 문화재 답사를

오신다고 하여 포석으로 나갔다.

차량 두대에 70명 이상 정도의 많은 인원이 오신데 대해

어떻게 안내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당 하는데로 성심껏

안내 하기로 했다.

 

행선지는

용장리 - 설잠교- 용장사지- 삼륜대좌불-마애여래좌상 -삼층석탑

-연화대-비파골-금오봉정상-상사바위-바둑바위

-마애석가여래(큰바위부처님)-상선암-삼릉계석불좌상-선각여래좌상

-선각 육존불- 마애관음보살상-냉골 석조여래좌상-상릉-경애왕릉

-삼체석불-지마왕릉 - 포석정

 

이 코스는 경주남산의 보물은 몇점을 빼고 거의 접할수 있는

가장 많은 문화재를 접할수 있는코스다.

나름대로 설명을 한다고 했지만,

말주변도 부족하고, 또 뒤늦게 못 들은 분들도 있고해서

이 코스를  다시한번 적어

보내니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경주 남산은  신라태조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난 "나정"에서부터

55대 경애왕이 견훤으로하여금 죽게된 포석까지 신라의 흥망성쇠가 이곳 남산에 있다

 

이곳 신라의 문화는 불교문화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삼국유사에서 남산을

절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총총하고(寺寺星張)

탑들은 기러기처럼 줄지어 늘어섰다(塔塔雁行)

 

남산에 오르려면 먼저 마음속에 있는 모든것을 내려놓아야한다

그래야만 천수백년전 신라인의 마음 불심 문화가 보인다.

왜냐하면 경주남산은 바위하나 돌조각하나에도 신라인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놓았기 때문이다

남산에 있는 불상은 다듬은 불상이 아니고

마치 바위속에 숨은 부처를 쪼아낸듯이 반듯하고 사실적입니다.

 

1000여년 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길. 

 1000년 전 신라 사람들이 불심으로 드나들던 그때의 마음으로 - -

  

용장골 들머리에서 -

 

 

 

 

 

  경주의 불국사나 황룡사, 석굴암 등이 지배층의 대작불사로 왕족과 지배층의 공간이었다면

                                남산은 백성들의 불심을 보듬은 곳이었다. 왕족들이 화려하고 우람하고 거대한 절집을 세웠다면,

                                                              백성들은 아예 남산을 통째로 불국토를 이루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삼국통일의 와중에 전쟁터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을 백성들의 신산한 삶과

                                                            그들이 닿고자 했던 이상세계를 남산에 그려내려 했던 것은 아닐까.

                                                      남산의 숲길에서 저절로 부처를 만나러 오갔을 신라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들머리에서 약15분 정도 올라가면 설잠교가 나온다

여기에서 설잠교위를 건너 좌측 미륵의 세계로 오를수있는 수미산( 불국토)

을 향한다

 

 

 

 

저어기 숲사이로 사람들이있는 저곳이 "용장사지" 이다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때 창건된 사찰로 고승인 대현스님의

고사가 전해내려오고 있으나 지금은 쓸쓸히 크고작은

돌축대 일부만 남아있다.

또한 이 절에는 조선초기 세조때 매월당 김시습이 기거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神話)를 쓴 절이기도하니 

약 800여 년에 걸친 긴세월 동안 용장사가 존재했음을 알수있다 .

매월당 선생은 용장사 뜨락에 북향화(목련)을 심어 영월에 귀양가 있는

단종 임금을 그리워 했다고 한다.

목련은 꽃봉오리가 펴질때면 항상 북쪽을 향해 피어나기때문에

북에 있는 임금을 그리는 꽃의 별칭으로 붙여졌다.

 

자 !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잘 봐야합니다. 이 두사람을 보는것보다

저- 위에 산 봉우리를 잘 보시면 하늘과 맞닿아있는 삼층석탑이 보이죠 - - ?

이 탑은 자연과 탑신이 일체가 되도록 두개의 기단으로 건축되었는데,

금오산 중앙 바위 봉우리를 하층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상층 기단을

다듬어 얹고 삼층석탑을 올렸는데,

이것은, 하층기단은 제석천을 지키는 수미산이고 탑위의 푸른하늘은

수미산정의 천상계로 서라벌 벌판을 미륵불이 굽어 살피는

불국토로 만들었다.

제가 들머리에서 한 말이 마음을 비워야 보인다.

또, 수미산정으로 올라간다고 했던말이 이것입니다

이렇게 동화 되어야 불국의 문화가 보입니다.

수미산 :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으로 가는산

사왕천 : 불교의 육욕중 첫번째 하늘로 사천왕이 다스리며 수미산의 중턱

도리천 : 수미산의 정상에 해당하며 석가불의 어머니 마야부인이 환생한곳

또한 선덕여왕이 도리천에 묻어달라한 그곳이며

이곳의 하루는 인간세계 100년에 해당하며 1,000세까지 머물수 있다(3,650만년)

제석천 : 불교의 수호신이며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에 있는 하늘의 임금

야마천 : 공거천, 즉 천상을 말하며 이곳의 하루는 인간세 200년이고 2,000세까지 머문다(1억4천6백만년)

도솔천 : 인간세 에서 덕업을 많이 샇고 불심이 깊으면 도솔천에 태어나는데

미륵불이 계시고 천상인이 즐기는 곳이니 곧 불국이며 부처가 되었다는 뜻이다

 

수미산 도리천에서 바라본 남산의 가을

 

 

   

 

이곳은 용장사 터에 있는 삼륜대좌불로 보물 187호이다

자연바위의 기단위에 북 모양의 중대괴임을 하고 그 위에 원반석을

층으로 쌓은 이러한 양식은 우리나라에서 유래가 없는 특이한 형태다 

삼륜의 대좌에 머리가 없는 좌불 이라 존명도 알수 없어 보는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기단부의 둥근 원반석 1층 2층은 보통모형이나 3층원반은 3겹 연꽃 방석 이다

윈쪽 어깨에 드리워진 가사끈의 수실이나 특이하게 흘러내린 가사의 자락들은

물결처럼 펄럭이며 무릎을 덮고 흘러내려 상현좌를 이루고 있는모습이 승상이란 말도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용장사에 대현스님이 계셨는데, 스님이 기도하면서 미륵장륙석상을

돌고 있으면 미륵 부처님 또한 스님을 따라 돌았다는 글이 있다.

삼국유사의 이야기처럼 이 석상이 미륵불이라 한다면,

기단석 위가 사왕천이 되고 처음의 둥근반석 위는 도리천,

두번째 반석 위는 야마천이 되며

마지막의 연화 원반대좌는 미륵보살이 계시는 도솔천이 된다.

이 엄청난 예술품, 천수백년전의 보물을 찬찬히 감상해 보시라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 보물 913호)

삼륜대좌불 옆에 아차 하면 못 보고 그냥 지나쳐버릴 바위벽 한켠에 숨이 막힐정도로

   아름답게 부조된 부처님이 계신다.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오는 옷자락이 가슴부분의 옷깃 속으로 접혀들어간 점은 남산 미륵곡 보리사에 있는

석불좌상과 비슷하다. 그러나 옷 주름 표현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여러층단을 이루면서 부드러운 물결처럼

처리되어 섬세한 편이다. 왼쪽어깨 바깥부분에 글씨가 있는데 "태평 2년8월"에 무엇인가를 하였다는 내용인데

마멸이 심하다. 이 마애불은 당당한 자세의 불신표현이나 부드러운 옷 주름선의 흐름, 섬세한 조각기법등에서

통일신라 전성기 때 양식이 남아있으나 시대적으로는 8세기 중엽의 석굴암 조각보다 약간 후대로 보고있다.

 

 

 

 

 

 

 

(4층으로 착각 할수있다. 밑부분은 기단부 임 - 기단부는 갓이 없는것으로 알수있다)

 

자 - ! 여기가 아까 저 밑에서 올려보았던 용장사지 삼층석탑 (국보 186호 )

아까 이야기 했던 말을 다시한번 살펴 보며 공부해 보자

이 탑은 자연과 탑신이 일체가 되도록 두개의 기단으로 건축되었는데,

금오산 중앙 바위 봉우리를 하층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상층 기단을

다듬어 얹고 삼층석탑을 올렸다.

이것은, 하층기단은 제석천을 지키는 수미산이고 탑위의 푸른하늘은

수미산정의 천상계로 서라벌 벌판을 미륵불이 굽어 살피는

불국토로 만들었다.

(오래전 새벽에 찍은 사진)

제가 들머리에서 한 말이 마음을 비워야 보인다.

또, 수미산정으로 올라간다고 했던말이 이것입니다

이렇게 동화 되어야 불국의 문화가 보입니다.

수미산 :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으로 가는산

사왕천 : 불교의 육욕중 첫번째 하늘로 사천왕이 다스리며 수미산의 중턱

도리천 : 수미산의 정상에 해당하며 석가불의 어머니 마야부인이 환생한곳

또한 선덕여왕이 도리천에 묻어달라한 그곳이며

이곳의 하루는 인간세계 100년에 해당하며 1,000세까지 머물수 있다(3,650만년)

제석천 : 불교의 수호신이며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에 있는 하늘의 임금

야마천 : 공거천, 즉 천상을 말하며 이곳의 하루는 인간세 200년이고 2,000세까지 머문다(1억4천6백만년)

도솔천 : 인간세 에서 덕업을 많이 샇고 불심이 깊으면 도솔천에 태어나는데

미륵불이 계시고 천상인이 즐기는 곳이니 곧 불국이며 부처가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가 수미산으로 보면 도리천에 속한다

저 보살님은 무슨 바램이 더 있어 돌을 올리는가 -

아마도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기도하는가

 

              경주의 불국사나 황룡사, 석굴암 등이 지배층의 대작불사로 왕족과 지배층의 공간이었다면

                                남산은 백성들의 불심을 보듬은 곳이었다. 왕족들이 화려하고 우람하고 거대한 절집을 세웠다면,

                                                              백성들은 아예 남산을 통째로 불국토를 이루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삼국통일의 와중에 전쟁터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을 백성들의 신산한 삶과

                                                            그들이 닿고자 했던 이상세계를 남산에 그려내려 했던 것은 아닐까.

                                                      남산의 숲길에서 저절로 부처를 만나러 오갔을 신라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잠깐 !  위와 아래 사진을 자세히 보라 - ! 톱니같은 자국이 보이죠 ?

남산에는 이렇게 갈라진 바위들을 많이 볼수있다.

이것은 옛 장인들이 바위를 자를때 아래 사진처럼 구멍을 파서

콩을 채워넣어 물을 부으면 그 콩이 불어나서 바위를 갈랐다.

그리고 겨울에는 이 구멍에 물을 부어, 그 물이 얼게되면

부풀게 되어 바위를 갈랐다고하니, 이얼마나 기상천외한 방법인가 - !!

이렇게 갈라진 바위는 톱니처럼 보이겠죠 -

 

 

 

 

수미산정을 다 올라오니 5.16 도로가 나온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을 걷고 내어다 보면서

발자욱 마다 보물이 숨겨져 있는 이 천년수도를

어떻게  해야할까 - - - 

수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여기서 삼화령으로 갔다가 다시 금오봉으로 와야 하는데

그냥 금오봉으로 가기로했다

대신 삼화령에대해 잠깐 집고 가자

삼화령은 금오산, 고위산과 이곳 연화대를 삼화령이라 하는데

남산은 정말 불국토로 생각했다는것이

남산은 미륵불과 연관이 깊다

 충담선사가 해마다 3월삼짇날과 9월9일 중구절에는 꼭 차를 끓여 미륵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이 삼화령에 미륵불과 관련있는 세분 석불이 있었는데 지금 경주박물관에 옮겨져있다

명확치는 않으나 연화대를 미륵불이 있었던곳으로 생각을 한다

위의 사진은 "비파골"이다

여기서 잠깐 ! 금오봉을 지척에두고 비파골이있다

 

32대 효소왕이 망덕사 준공식에 제지내러갔다가 남루한 차림의 노승이
        비파암에서 왔다고 공양을 청하자

왕이 별로 달갑지않게 선심쓰듯 공양이나 하라고 말하며

돌아 가거던 왕과 함께 공양 했다는말은 하지말라고 했다.

이 누추한 노승이 예 - 왕께서도 대궐에 가시거든 진신석가와 공양했다는 말은 하지마시오

하고 구름을 불러 날아가버렸다. 

 그제서야 왕이 후회를 하고 신하들께 찾으라했지만 비파골짜기 바위에

지팡이를 남겨놓고 사라져버렸기에 왕이 석가사를 짖고 공양을 올렸다는전설이 있다

 

 

 

 금오봉 정상에서 인증 샷 - !

 

 

 

 

정상에서 상선암 쪽으로 내려가는계단

 

 

 

상선암 윗쪽 상사바위

옛날 이 아랫마을 큰 부잣집에 머슴으로 있는 돌쇄와

이집 아씨에 얽힌 슬픈 이야기다.

돌쇄와 아씨는 서로 사랑하게 되었으나 이사랑은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이란것을

잘 아는 돌쇄는, 어느날 남산 이바위 아래서 종의 처지를 비관하며 목배달아 죽었다. 

그날밤, 아씨의 꿈에 그리운 돌쇄가 나타나 이바위에 자기가 있다 하므로

다음날, 그곳에 가보니 돌쇄가 목매어 죽어 있었다.

그리운이의 죽은 모습을 보고 아씨또한 목매달아 버렸다.

그 뒤로 이 바위를 상사바위라 이름했고 이 바위 아래서 바위 위의 움폭 파인곳에

돌을 던져 얹혀지면 소원이 이루어 졌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유효하다 ( ㅎ ㅎ - )

 
 산천초목 (山 川 草 木) 11.12.06. 18:15
竹田님,감사합니다,우리산죽회원 90 명을위해 남산 보물들을 다 소개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기회가 된다면 못 다본 남은 보물도 다시 보러 가야 할듯 합니다,그때도 다시 부탁 드려도 될런지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 하시고 하시는사업 번창 하시길 기원 합니다,
 
 
 竹田 서동기 11.12.07. 10:19
회장님 부끄럽습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기꺼이 길안내는 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옥돌 11.12.06. 19:15
일요일 하루 휴일을 송두리째 선뜻 할애해 주시고 산행 하시면서 안내하시랴~ 정말 힘드셨을 터인데 이렇게 보충수업에 복습까지 시켜주시느라 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늘 땅만 보고 걷기에 바빳던 산행에서 지난 남산의 산행은 너무나 여유로웠습니다~ 또한 이렇게 재 탐사 할 수 있도록 기록으로 다시금 정리 해 주셔서 남산의 보물들을 다시금 마음속에 새겨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竹田 서동기 11.12.07. 10:20
감사 합니다. 함께 다니는 모습 참 보기 좋았습니다. 늘 행복 하시이소 ----------
 
 
 천년바위 11.12.06. 21:08
죽전님 우리산죽회 회원님을 위해서 바쁘신 시간을 내어서 수고해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날은 바빠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왔습니다.함께하였던 모든회원님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다음기회에도 다시한번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竹田 서동기 11.12.07. 10:22
부족한 부분 많았습니다. 복많이 받으시고 늘 행복 하십시요 -
 
 
 돌부리 11.12.07. 17:59
복 마이 바드 시소 참 경주인 서동기 친구
 
 
 竹田 서동기 11.12.08. 10:33
미안타 --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