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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산 구산서원 137년만에 복원 (매일신문 다시보기)

죽전일지 2024. 9. 29. 18:27

경주시 구미산 구산서원 137년만에 복원   (매일신문 다시보기)

경주시 현곡면 구미산(龜尾山)자락에 조선 초기부터 수백년 동안 지켜오다
소실된 구산서원(龜山書院)이 137년만에 복원되어 오는 2005년5월7일 백상승 경주시장, 권순국 유도회 회장, 이석증 향교전교를 비롯한 각급  기관장,유림인사등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이 있다. 또한 이날 고려충신 서필(徐弼) 선생과  조선 태종조의 명신 서유(徐愈) 선생의 위패 봉안식이 있고 11시에 준공식행사가 있다. 특히 서원 복원 뿐 아니라 각종 문화행사를 할수있는 구산문화관을 병설 하였고 경지 3,000평을 공원으로 조성하여 시민휴식 공간으로 이용할수 있도록 꾸몄다.

구산 서원은 조선 정조 10년에 경주 사림(士林)이 예조판서를 지낸 좌명공신 서유(徐愈)선생을 봉안하고 구산사라 불려왔는데 헌종 14년에 도내 유림의 공의(公議)에 의해 서원으로 승격 되었다. 당시 건물로는 상충사 (象忠祠),  제락당(濟樂堂),풍흥제(風興齊),일신제(日新齊),유의문(由義門), 어서각(御書閣),신도비각등이 있었는데 1868년 고종 5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소실되어 일부 누각만 남아 130여년을 폐허로 지내왔다. 2003년 서유선생의 21대손 서병옥 옹이 향사와 문로(門老)의 여망을 듣고 사재를 털어 문화계 인사의 조언을 받아 당시 건축양식대로 설계하여 구산 서원을 복원하게 되었다.  

이날 향사의 주관은 경주유림에서 실시하는데, 봉안되는 두분중 서필 선생은 고려 건국초인 광종조에 태사(太師) 대광내의령을 지내고 고려 왕조에 배향된 사람으로 거란의 10만 대군을 이끈 소손녕을 외교로서 물리친 서희의   아버지다. 고려 사초에 상세히 기록된 바로 인권중시론을 제기하였고 귀화한 한인 (漢人)우대를 막고 나라기강을 확립 하였다. 임금이 하사한 금 술잔을   되돌려 보낼 만큼 절제를 신조로 삼았고 죽음에 임해서도 임금에게 "더 이상의 살생을 금하라"는 충언의 글을 쓴 사람으로 KBS사극 "제국의 눈물" 에서 도 그의 곧은 절개가 소상하게 소개되어 나온바 있다.  

구산사에 첫 봉안된 서유 선생은 이조초기 태종조의 공훈록을 보면 왕자의 난을 바로잡아 추충익대좌명공신(推忠翊戴佐命功臣)으로 이성군 이라 봉하고 태종이 서유선생의 영정을 그려 하사함에 현제까지 보존되고있다. 세종대왕은 선생의 공을 태종비석뒷면에 새겼고 선조는 불천위(不遷位)로 명하였다. 숙종때는 후손에게 특사를 하라는 단서철권을 내려 현재 보존되고 있다. 그가 사망하자 왕이 양경(良景)이라는 시호를 내려 양경공이라 한다. 경주에 수백년전의 서원과 문화관이 복원 되어 자라는 후손에게 예절과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명소가 생겨 뜻 깊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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