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경협 안에 있는 백화동
백가지 꽃이 있다고 하지만 조화들 - - - -
여기는 천단공원
명청대의 황제가 하늘, 땅, 해 , 달에게 일년에 3번씩 제사를 지냈다.
위치는 자금성 남쪽에 있다
황제가 오곡풍양을 기원했던 제단으로 중국 최대의 단묘 건축물로 명나라
영락제가 1420년에 자금성과 함께 건축하였다.
주요건물로는 기년전 황궁우 원구단을 들수있지요~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중국의 중요 보호문화재이다.
기년전(祈年殿)
중국에서 군주 제천 행사를 맞기 위해 지은 제단 중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서 천안문, 자금성과 함께 베이징의 심벌이다. 기년전은 직경 32m,높이 38m,25개의 중심에 유지된 제단으로 현존한 중국 최대의 제단.중국 건축 사상 중요한 건축물로 간주 된다.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에 황제가 오곡풍작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목조에다가 금도금을 입혔으며, 삼층으로 유리기와를 올려 지붕을 만들었다. 명나라 시대에는 위에는 청색과 황녹색으로 되어 있었지만, 건륭제가 1751년에 중건을 하면서 전부 청색으로 바꾸었다. 1889년 낙뢰에 의하고 한번 소실되었지만,1906년에 다시 재건되었다.
기년전은 천단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기곡전이라고도 하며, 구조 형식은 위는 집이고 아래는 단이며 3층 처마는 층층이 작아지면서 우산 형태를 이루었다. 6m 높이의 둥근 한백옥석대 위에 우뚝솟아 있는데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듯 기세가 비범하고 웅장 화려하다. 이 기년전을 받치고 있는 것이 바로 기곡단(祈穀壇)인데,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단은 직경 68.2m, 중단은 79.6m, 하단은 90.8m이다.
기년전의 중심이 되는 4개의 기둥은 춘하추동 4계절을 상징하며 직경이 1.2m, 높이는 19.2m에 달한다. 둘레의 길이가 보통 사람의 두 아름을 넘는다. 그 주위에 각각 12개의 기둥이 두 줄로 둘러싸고 있는데 안쪽의 12 기둥은 즉 중간층의 12대 붉은 기둥에 의해 분할된 공간은 1년 12달 '월'을 상징하고, 외층의 12개 처마기둥은 하루의 12개 시간(12時을 상징하며,보정 아래의 뇌공주는 황제의 "천하통일"을 상징한다. 천장에는 용이 그려져 있다. 기둥에 사용된 목재는 전부 운남성(雲南省)에서 운반해 온 것이다. 기년전은 "경천예신(敬天禮神)"의 사상으로 설계, 전내의 기둥은 모두 특정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금성의 기와가 황제의 색깔인 황금색인데 비하여
천단의 기와가 청색인 것은 황제가 하늘에 대한 겸손을 의미한다.
황궁우(皇穹宇) : 멀리 황궁우 지붕이 보인다
원구단의 북쪽으로 황궁우가 있다. 제천 시 사용하는 신패 등은 모두 이곳에 보관 되었다. 명나라 가정제 9년인 1530년에 짓기 시작했다.
전문 신주를 모셔놓는 사당으로서 속칭 침궁이라고 한다. 높이 19.5m, 밑부분의 직경 15.6m미터, 목조구조이며, 지붕은 8개 기둥에 의해 지탱되고 대들보가 없이 두공을 쌓아올렸으며, 천정판이 층층이 축소되어 아름다운 궁륭식 천정을 형성하였다. 기년전을 축소해 놓은 듯한 아담한 건물이다.
황궁우는 같은 시기에 지어진 다른 건물과는 다른, 독특한 품격이 있는 건물이다. 예술성 높은 건축물이며 내부의 장식도 화려해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나 학자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원구단(圓丘壇)
황제가 하늘에 제를 올리기 위한 의식을 거행한 장소이다.명나라 가정(嘉靖) 9년인 1530년에 만들어졌으며, 건륭 14년, 1749년에 층축되었다. 매년 동지에 풍작을 감사하는 의식을 행하고, 가뭄이 든 해에는 기우제를 지냈다.
형태는 중국의 우주관인 천원지방(天圓地方)에 따라 원형이다.또 난간 계단 등이 음양 사상을 따라 지어졌으며 각 단의 직경을 합계한다면 45장이고, 이것은 단지 9의 배수라고 한 의미뿐만 아니라,구오지존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회음벽(回音壁)
황궁우의 담으로 원형이며, 둘레가 193.2m, 높이가 0.9m, 두께 0.9m이다. 이는 벽돌을 다듬어 가며 빈틈없이 이어 쌓은 담으로 두 사람이 벽 안쪽에 각각 동서 벽밑에 서서 벽에 얼굴을 북쪽으로 두고 벽을 향해 대고 낮은 소리로 이야기하면, 마치 전화로 통화하는 것처럼 음파가 담벽을 따라 계속반사 전진하며 서로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다.
어째서 이런 신기한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회음벽은 원형이고 벽돌을 가지런히 이어 붙였으며, 벽면이 매우 매끄럽다. 게다가 벽 위에는 기와를 얹은 처마가 있어서 소리가 분산되어 소실되는 것을 막아 주므로 소리가 둥근 벽을 타고 반사되어 전달되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이것이 음향학의 원리를 건축에 응용한 것이라고 자랑하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우연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발상과 착상과 해석이 재미있다.
기년전 황궁우 원구등 중요한 건물이 북에서 남으로 일직선으로 서있다.
중국인들의 붓글씨 취미
이화원이나 천단공원에서 보면 현역에서 은퇴한 노인들이 취미 생활로 아침부터 공원에 나와 자신의 장기인 붓글씨를 쓰면서 여가생활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긴 막대에 큰 붓을 달아 흐르는 물을 찍어 바닦에 쓰는데, 일필 휘지를 흩날리는 솜씨가 정말 멋있고 부럽다.
우리에겐 너무나 신기했지만 그들은 그차체가 하나의 생활이다
우와 - ! 이 할머니는 초서(草書)를 - -
북경오리(北京 烤鴨, 베이징카오야, Beijing Duck)는 특수하게 사육된 오리를 아궁이에 넣어 껍질이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잘 구운 오리고기를 껍질과 살코기를 썰어내, 만두피처럼 얇은 병에 오리고기와 대파 썬 것에 장을 찍어 싸서 먹는 중국의 대표적인 요리다. 파삭파삭하고 고소한 맛이 나는 껍질부분이 가장 맛있는 부위이며, 고기를 썬 후 뼈 부분은 다시 구워주는데 손으로 집어 뜯어 먹으면 된다.
북경의 야경 으로 자랑꺼리라고 안내 하는곳
세계에서 3번째로 큰 TV가 설치되어진 더 플레이스(길이가 250m)
이 백화점 역시 2008베이징 올림픽 직전에 세워졌다
서태후의 휴양지 이화원 (?和園)
.지춘정(知春亭) :이화원의 곤명호 옆 호수 안으로 들어가 있는 아름다운 정자다.
사방에 버드나무 가지가 드리워져 있는데 봄이 오면 춘색이 완연하여 이름 그대로 지춘정(봄이 왔음을 안다는 뜻)임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 서면 27도로 곤명호와 만수산을 볼 수 있는데 앞에는 탁 트인 곤명호, 오른쪽으로는 불향각 등 만수산이 그리고 왼쪽으로는 17공교와 이어진 작은 섬, 멀리 곤명호 건너에 아름다운 하얀 옥대교(玉帶橋)가 바라보이는 등 절경으로 감상할 수 있다.
이화원에대해 알려면 아무래도 이곳의 주인인 서태후에 대해 알아야 할겄같아 적었다. 재미 있으니 읽어 보시기 바람
서태후는 만주 귀족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전란으로 인하여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리하여 어릴 때부터 황궁에 들어가 부귀영화를 누릴 것을 고대하였다. 그러다가 17살에 수녀(궁녀)로 뽑히어 황궁에 들어갔고 후에는 제7대 함풍황제의 황귀비로 되었고 제8대 동치황제의 생모로 되었고 제9대 광서황제의 이모로 되었던 것이다.
제7대 함풍황제는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바로 서태후와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함풍황제가 죽은후 서태후가 낳은 6살난 아들이 황제로 되면서 서태후는 황비에서 황태후로 되었다. (그리하여 28세부터 수렴청정하기 시작하였는데 중국을 통치한 시간이 거의 48년이나 된다. 서태후의 이름은 나라씨였는데 황제의 황후가 동쪽채에 살았기에 동태후, 황비로 있던 나라씨가 서쪽채에 살았기에 서태후라고 부르게 되었다.)
청나라는 만주족이 건립한 나라였고. 만주족은 8기제도를 실시하였는데 상3기, 하5기로 나누는데 서태후의 가정은 상3기에 속했다. 귀족 집안이었다. 17살에 황궁에 들어간 서태후는 황제의 총애를 받기 위해 일년동안 노력하였다. 그러던 어느 하루 그는 황제의 내시들에게 부탁하여 황제가 산책할 무렵 준비하고 있던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서태후는 노래를 잘 불렀는데 황태후로 된 후부터 매일 경극을 보았고 중국의 경극발전에 아주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산보를 하던 황제가 은은한 노래소리를 따라 찾아가보니 웬 젊은 여인이 사색에 잠겨 노래를 불렀는데 이때로부터 서태후를 알게 되었고 (황궁에 궁녀, 황비가 너무 많기 때문에 황제의 눈에 들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왕자를 출산했다. 역사에 의하면 함풍황제 생전에 서태후는 그렇게 총애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태후가 48년이나 중국을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은 서태후가 함풍황제의 유일한 아들을 낳아주었기 때문이다
서태후가 총애를 받지 못한것이 사진을 보니 알만하다
거기다가 욕심과 고집도 세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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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이화원의 곤명호는 서태후가 명하여 판것이라 하지만 이화원은 청나라 건융황제시기에 건설되였어요.
건융황제때부터 청나라 황제의 별장으로 볼수 있고 또 한 곤명호를 파서 만수산을 만들었습니다.
곤명호는 건륭황제때부터 청나라 북경수군의 훈련기자이기도 합니다.
즉 건륭황제가 곤명호에 갈때마다 수군의 군사연습이 즉시로 진행합니다.관련 글에 의하면 장면이 굉장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황제가 이화원 갈려면 차타거나 말타지 않아요.자금성에서 배타고 물길따라 곤명호까지 가서 이화원의 부두에서 내립니다.
[불향각,佛香閣]
저 뒤쪽 산 자락에 보이는 건물이 불향각이다
만수산 전산 비탈 21m 높이의 거색기반 위에 건축, 남쪽은 곤명호를 마주하고 북쪽은 지혜해불전을 등지며, 이 불향각을 중심으로 각 건축군이 매우 정연하고 대칭되게 양날개로 펼쳐지면서 서로 호응하여 마치 한마리의 박쥐모습을 하고 있다.1860년 불향각은 영국,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불타버리고 그 후 원상태로 재건하였는데 이는 라마교의 건축물이다.
이화원은 북경시 서북 교외에 위치, 도심에서 약 19키로미터 거리로
청나라 때의 황실 원림과 행궁이었다. (서태후의 여름 별장)
이화원의 원명은 청의원이며 1764년에 건조되었으며
부지 290헥타르, 그 중 수면이 220헥타르이다.
원내는 궁정구, 전산 전호구, 후산 후호구 3개 경치구로 나뉜다.
전당, 누각, 정자가 도합 3,000여칸으로 황제와 황후가
정치 활동을 하며 휴식, 유람하던 곳이다.
1860년 영국,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불타버리고 1888년에
서태후가 해군 경비 500만냥 배근을 유용하여 재건,
10년만에 완공, 이름을 "이화원"으로 고쳤다.
장랑,長廊]
동쪽의 요월문에서 서쪽의 석장정까지 총 길이 728미터, 도합 273칸의 화랑으로 중국 회랑 건축 중 제일 크고 제일 길고 제일 명성이 높은 장랑이다.장랑의 채색화 제재는 꽃, 새, 나무, 돌, 산, 물, 인물 등 매우 광범위하다. 8세기 중엽 건륭 황제(기원1736-1796년 제위)가 궁정의 화가를 서호에 파견하여 사생하게 하였는데 546폭의 서호 경치를 그려 장랑의 273칸 화랑의 들보에 전부 옮겨 그렸다.금세기 60년대 중국정부는 서호풍경화를 보류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특색을 지닌 채색화 1만 4천여폭을 더 그려 장랑을 제일의 화랑으로 되게 하였다.
어디서 음악소리와 우렁차고 정돈된 합창소리가 들리기에 무슨 행사를 하는가해서
가보니 남여 어른들이 모여 색스폰이나 아코디언에 맞추어 찬송가를 부르듯 합창하고 있다.
가이드에게 뭔 일이냐고 물어 보니, 저분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지만 저렇게 수시로
무언의 약속처럼 모여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풀고 취미생활을 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공원 같은 곳에서 몇번인가 저런투의 합창 소리를 들은것 같다.
이 중국인들 수시로 춤과 노래 태극권 이런것으로 곳곳에 모여 취미생활을 한단다
이런것은 정말 본 받을만 한 문화라 생각된다.
북경 요리 : 차이껀시앙 파이구(菜根香排骨 )
먼저 돼지갈비를 튀겨낸 후, 매콤 달콤한 양념장에 버무린 것으로 한국의 양념 통닭을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북경 수도박물관
중국역사박물관 다음으로 큰 고궁박물관
공산당 집권 후 출토한 북경 유물만 전시한다는 지하 1층 지상 6층
로비에 들어서면 한 지붕 아래에 두 개의 빌딩과 커다란 종이 있는 것 같다
왼쪽 종 모양의 원형 전시실은 예술분야인 미술, 회화, 서예품...
오른쪽에 있는 두 개의 빌딩이 마주한 듯한 유리벽 일반 전시관은 주제별 전시관으로
역사유물과 건축물, 북경문화 거리 풍경, 혼례식, 풍물패, 장례식 행렬 등
백옥 십이지신상과 술잔, 벼루, 먹, 서화, 서예
팔뚝보다 큰 붓. 남빛 비단에 황금빛 자수 곤룡포, 아들 백 명을 낳으라는 황후의 백자의百子衣,
귀부인이 신었던 일곱 살 아이 신 같은 전족
붉은 색이 악귀를 쫓고 밝은 기운을 부른다고 붉은 옷에 붉은 가마 혼사 행렬,
대문 앞에 돌 조각품이 사자이면 황족, 북이면 무관, 벼루이면 문관,
사합원이라 부르는 전통 북경 가옥에 붉은 장막이 있는 신혼 침실,
옛 그림 그대로 따라 만든 마을 미니어처
시장에서 흥정하는 풍경, 사발을 엎은 듯 동그란 젖을
젖꼭지까지 다 내놓고 미소 짓는 섹시한 부처,
넓은 방 가득히 걸어둔 익살스러운 음화淫畵들, 도자기와 도요陶窯, 토용土俑, 사치품, 서민용품등
그냥 그렇고 그런 유물들을 , 별 감명 없이 보는데 - - -
아니 이런 - - - ?
이런 도야지 같은 작자들이 ?
연대별 지도를 그려 놓았는데 세상에 그 지도에
한국해도 아니고 동해도 아니고 동해와 일본해 연기명도 아니고
일본해로 표기 되었다니 - ! !
이 박물관이 불과 몇년전 건축되었는데 도데체 우리 정부는 뭘했는가 - -?
동해가 일본해 이면 동해에 있는 독도나 울릉도는 - ?
동해물과 백두산이 - 애국가는 ?
동해에서 해수욕하는 한국사람들은 일본해에서 해수욕하나 - ?
속이 불글 부글 했지만,
일단 청와대와 외무부에 이사진을 올리고 대응방안을 물어야 할거다.
이곳은 박물관이기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보며 특히 외국인들도
많이 볼것이다. 반드시 고치도록 노력해야 하며
우리 국민 또한 외국인들 자국민들 할것없이 이것을 알려야 한다.
이렇게 3박 4일의 여정을 끝으로 부자간의 북경방문기를 마친다.
장성한 대한민국의 청년이 된 아들과 함께한 여행-
아들아 - . 이번 여행을 통해 무언가 라도 얻는게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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